1. 춥다. 의정부만 나가도 연천과는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온도계가 붙어있는 버스를 타다 보면, 남으로 내려갈수록 차량 내 온도가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앞에서 17도였다면, 한탄강쯤에서 18도, 동두천에서 19도 이런 식이다.


2.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PX가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왔지만, 20시까지밖에 운영을 하지 않는다. 간단한 군것질을 제외하고 장을 보기 위해서는 날을 잡고 전곡이나 동두천까지 다녀와야 한다. 드라이크리닝 역시 세탁소가 있는 전곡까지 빨래를 들고가야 한다. 약국도 없기 때문에, 갑자기 아플 때를 대비해서 상비약을 사두거나, 밤일 경우 그냥 참고 다음날 전곡에 나가야 한다.


3. 교통체증이 없다. 그래서 버스가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한다. 버스정류장 안내판에 18정거장 전, 13분 뒤 도착이라고 쓰여있다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13분 뒤에 도착한다. 버스의 정시도착을 막는 주적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쓰레기다.


4. 등하굣길에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물론 6시 55분까지 동두천역으로 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동시간은 집~동두천역이 약 3~40분이지만, 버스가 오는 간격 탓에 더 일찍 나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 5시 55분에 버스를 타서 전곡에 간 후, 6시 25분에 통근열차를 타서 간다. 역에서 약 10분정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하굣길의 경우 시간을 잘 맞춰서 간다면 2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는 기적이 일어날 때도 있다. 소요산역에서 버스가 연천 주민들을 기차 시각에 맞추어서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5. 생각보다 막차가 빠르다. 심야버스가 더 늦게 다닌다지만, 아직 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소요산 가는 열차는 23시까지도 다니지만, 연천가는 막차를 타려면 서울에서 20시 40분경에는 전철을 타야 한다.(종로 기준) 연천가는 일반버스 막차가 23시에 전곡에서 출발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녁약속을 잡으려면 대충 저녁만 먹고 자리를 뜨거나, 약속장소가 강남이면 그냥 외박해야 한다. 하지만 심야버스 시간표를 구한다면 이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6. 광주에 있을 때도 늘 혼자서 집을 봤고, 자취나 기숙사에서 혼자 산 경험이 많아서 살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귀차니즘. 아줌마들이 맨날 힘들다 힘들다 하는게 이해가 간다. 어려운 건 아닌데. 귀찮다!!! 그래도 내가 한 요리와 빨래, 청소 등으로 집이 좀 사람사는 구석같아 보이는 모습을 보일 때 기분은 무지 좋다.


7. 동생과 같이 살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다. 저녁에 동생이 집에 오면 같이 귤을 까먹으며 요리프로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소소한 낙이다. 주말에는 같이 게임도 할 수 있으니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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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06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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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밤에 악몽을 꾸었다. 기억하기도 싫다.


2. 요새 자소서 첨삭을 도와주는 기현이를 만나서 보은을 하고 왔다. 식사를 하고나서 또 자소서 첨삭을 받았다. 문과대학생이라 글빨이 살아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다른 기이한 자소서에 대응할 수 있게 경험들을 잘 정리해놓으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3. 이번주에는 새로 뜬 취업공고가 없어서 시간이 남아서 오랜만에 박물관에 갔다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을 보았다. 그 중 하나는 고시촌에 관한 전시였다. 전시물, 글귀 하나하나가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꾸미는 것도 포기하고.', '3%만이 성공하고 97%는 떠나게 되는' 등의 구절이 특이 와닿았다. 모든걸 포기했지만 97%가 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다. 3%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도 만나고, 포기한 것보다 얻은게 많았다. 더 버리지 못해 무거워서 등용문에 오르지 못했다. 원하지 않았던 길이지만 그것 하나 이기지 못했냐고, 돌고 돌아온 지금은 무얼 하느냐고 전시는 나에게 물어보는 듯 했다.


4. 돌아오는 길에 영어학원에 들러 토익과 토익스피킹 강좌를 신청했다. 다음달부터는 정말 바빠질 것 같다. 학년이 높다는 이유로 갑자기 뽑힌 행정학개론 조모임 조장자리를 빨리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으면 과로사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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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밤에 꿈을 꾸었다. 대개는 1인칭 시점으로 꿈을 꾸는데 오늘은 3인칭 시점의 꿈을 꾸었다.

 

2. 꿈의 내용은 '그'가 인터넷질을 하다가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보고 동경의 감정을 가진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람의 사진을 계기로 그 사람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 사람이 살던 곳곳을 찾아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동경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그 사람 사이에는 25년이라는 시간차이가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그 사람은 자기 친구의 어머니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인간이 한 젊은여자 사진보고 혼자 망상에 빠졌는데 알고보니 친구 엄마였다는 얘기.

 

3. 오전에 집안일을 좀 하다가 오후에 심심해서 밖에 나왔다. 어머니의 명령(?)대로 18시까지 어머니 일하는데까지 걸어오라고 한 것도 있었기에 동네 한바퀴나 돌면서 시간이나 버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돌아본 동네는 겉보기에도 달라진게 많았다. 작은 학원들이나 의원들이 있던 거리에는 환전소와 쌀국수집, 동남아 식료품가게 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공원 곳곳에는 '여기서 쓰레기를 버리면 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같은 경고판들이 붙어있었다. 동네사람들 말로는 하남 인구의 10분의 1이 외국인이라곤 하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공단 옆이고 주변이 다 개발되면서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하고 집 크기도 작은 우리동네로 몰려온 듯 하다.

 

4. 반대로 한국인들은 다 신도시쪽으로 이사가버린듯 하다. 한참 신가리쯤을 지날때가 하교시간대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동네보단 그쪽이 더 활기차보였다. 하긴, 예전부터 눈치빠른 친구들은 일찍일찍 전학가곤 했지만. 아마도 초등학교/중학교 동창들은 이제 광주의 다른 곳에서 더 쉽게 찾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우리동네에 다니는 버스 노선수는 많아졌지만, 빈도는 전보다 줄어든 것도 이를 뒷받침할지도 모르겠다.

 

5. 18시에 어머니 가게에 들러서 어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추리닝을 새로 샀다. 내일은 어머니께서 오전근무셔서 혼자 버스나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야한다. 미리 짐정리를 해두고 일찍 자야겠다.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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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양온지 4일차. 일기쓴지는 몇주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2. 미세먼지때문에 바깥운동은 줄이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1층부터 집이 있는 14층까지 걸어서 내려가서 걸어서 다시 올라오면 되는 일이다. 시작할때는 아 언제갔다오지 했는데 막상 내려갔다 올라오니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신림동 종점에서 내 방까지 올라오는 길의 거리보다 더 짧고 경사도도 완만한듯 하다.

 

3. 오전에 방에서 공부할때 창문이 덜덜거린다. 또 전투기나 고등훈련기가 날아다니나 보다. 서울에 있을때보다 더 시끄럽긴 한데 어렸을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소리인지 이미 백색소음이 된 듯 하다. 계속 들으면 짜증나는건 인간이지라 당연하긴 한데 오랜만에 들으니 조금은 반갑다. 역시 공군

 

4. 오후에는 아버지랑(아버지께서 일나가는 날엔 혼자서) 어등산에 다녀온다. 혼자서 가면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데 아버지랑 같이 가니까 덜심심하고 지루하지도 않다. 예전에는 산에서 거의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몸이 무거워져서인지 조금만 올라가도 헥헥거린다. 아버지보다도 더 헥헥거리는것 보니 내가 불효자다. 오늘은 아버지께서 일나가는 날이라서 혼자 갔다. 심심해서 후딱 갔다왔다.

 

5. 집에 돌아가는길에 등산로 입구 근처에 젊은 여자애들이 빨래건조대, 청소용 솔, 빗자루 등을 들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뭐하는인간들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20년 넘게 등산로 입구로 애용하는 곳은 바로 여자대학 앞. 신입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신나서 생활용품을 들고가는 모습을 보며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근처 여자대학의 존재감을 깨달았다.

 

6. 벌써 주말이다. 다음주에는 슬슬 올라갈 준비도 해야하고 올라가서는 이사준비도 해야한다. 막막하다. 10일까지 다 마칠 수 있을까.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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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유영철같은 연쇄살인범이나 김수철같은 아동성범죄자가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요새는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들고다니고 부모님이 시시때때로 위치확인을 통해서 아이가 안전하게 귀가했는지를 확인하는 서비스가 유행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초등학교에는 보안관이라고 해서 아저씨들이 학교를 지키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불안감은 아이들에게도 비슷하게 존재할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인육괴담이 판을 치고, 봉고차 납치 등등 다양한 괴담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20대인 내 또래도 그런 괴담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괴담은 최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국민학생일 때에도 괴담은 존재했다. 다만 지금은 어른들이 주도적으로 기사화하고있다면, 그때는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에게 알려지는 형식이었다. 격동의 8말9초에 태어난 아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초코파이 박스 뒷면에 붙어있던 개구리소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홍콩할매를.

 

 

홍콩할매가 어떻게생겼나고 묻는다면 왼쪽의 할머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90년대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귀곡산장'의 이홍렬

 

  서론이 길어졌다. 얼른 넘어가자.

  홍콩할매는 유치원때 잠깐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렇게 임팩트는 없었다. 살던 동네가 지방도시의 변두리라 할머니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기에 할머니가 가까우면서 먼 존재인 도시애들과는 할머니관(觀)이 다를 수밖에. 또는 홍콩할매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그 당시 내 나이가 무지 어렸다. 하지만 오늘 얘기하려는 빨간마스크는 달랐다.

 

2. 빨간마스크는 누구?

 

 

이런 것이 아니다.

 

  지방마다 전승도 달라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90년대 초반쯤, 대략 93~94년경에 상륙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괴담으로, 빨간마스크를 쓴 키 큰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어느날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 빨간 옷에 빨간 구두, 빨간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여자가 살고있었다. 그녀는 일견 보기에는 긴 생머리를 가진 슬렌더 체형을 가진 젊은 아가씨였다. 그는 낮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깜깜한 밤에만 움직인다.

  사람들은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 패션에 궁금함을 가졌지만, 곧 그 궁금함은 공포와 절규로 바뀌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내 얼굴 예뻐?"

 

  그는 이 질문과 함께 빨간 마스크를 벗어제꼈다. 빨간 마스크 뒷편에는 턱 가까이까지 찢어진 입술이 있었다. 대부분은 그걸 보고 놀라 죽거나, 혹시 정신을 차려서 질문에 대답하더라도 어떻게든 죽게 되어있다. 만약 예쁘다고 대답할 경우 '똑같이 만들어 줄게' 하면서 죽이며, 예쁘지 않을 경우 화를 내면서 죽인다고 한다. 만약 질문을 회피하여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빨간마스크는 달리기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곧 붙잡혀서 참혹하게 죽이고야 만다.

  빨간마스크는 사람을 죽일 때 특징이 있는데,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서 사용하기도 하며, 혹은 손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자기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죽인다는 점은 같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1995년경에 위와 같은 빨간마스크 이야기가 나타났다. 나는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선생님이 없는 쉬는시간에는 빨간마스크가 나타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고, 누구는 저녁에 심부름하고 오는길에 빨간마스크를 멀리서 봤다고 하기도 했다. 누구는 자세하게 작년쯤 일본에서 부산을 타고 건너왔다고 했고, 최근에 광주에 나타난 것이라고 지금생각해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선생님들의 귀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갔고, 선생님들은 그냥 귀신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애들 장난이겠거니 했던 선생님이었겠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당돌한 국딩이었던 내 친구들은 빨간마스크를 잡으러가겠다고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무기는 다음과 같았다.

 

1. 모른다고 말하고 튀기 : 그러나 빨간마스크는 달리기가 빠르고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답을 얻어내기 때문에 불가능

2. 보통이요 : 가장 단순한 회피방법이지만 빨간마스크를 다시 만난다면 피할 수 없다.

3. 거울 보여주기 : 빨간마스크가 질문을 걸 때 재빨리 거울을 꺼내서 빨간마스크를 비추면 놀라서 죽는다!

4. 마늘, 십자가 : 드라큘라에서 영향을 받은 이야기였지만 드라큘라와 빨간마스크와 싸우면 후자가 이기기 때문에 곧 묻혔다. 주로 교회다니는 아이들이 쓰려던 방법이었다.

5. 단체로 몰려다니기 : 빨간마스크는 여럿이 몰려다니면 누구에게 물어볼 지 결정을 못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몰려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들이 짱구를 굴려서 내린 결론은 3번과 5번. 특히 빨간마스크가 잠드는 낮에 그가 사는 집을 급습해서 혼을 내자는 결론을 내리고, 곧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3. 빨간마스크를 잡겠습니다. 잡겠습니다. 안되잖아??

 

 

당시 빨간마스크가 사는 곳으로 알려졌던 우리동네의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당시에는 파란 뚜껑이 있던 곳에 녹색 호로(천막)가 있었다

(2013년 6월 2일 촬영)

 

  빨간마스크의 공포에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빨간마스크를 잡아서 경찰아저씨로부터 상을 받자는 우리들의 원대한 계획은 곧 실천에 옮겨졌다. 다들 멍청한 건 아니여서 대다수의 초등학생들이 하교길에 빨간마스크네 집에 한번씩 들락거렸다. 절반은 위와 같은 마음으로 절반은 호기심에. 나는 귀신따위를 안믿어서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빨간마스크를 잡는데에는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이 적극적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자애들 서넛이 지하주차장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면 한참 후에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면서 도로 올라오고, 그러다가 정신을 잠깐 차리고 계속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슬픈건 당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1학년은 9개 반에 한반에 45~48명정도였으니 최소 300명정도는 들락거렸다는 얘기가 된다. 가뜩이나 이 아파트단지는 학교 정문에 위치해서 정문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 곳을 무조건 거쳐야 한다. 또 1학년만 있겠는가? 2학년 이상까지 올라가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당시 우리학교의 전교생은 2000명이 넘었다!!! 특히 2학년 형누나들은 2부제 수업을 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애들 장난인줄 알았던 이 아파트 주민들은 결국 뿔이 났다. 애들이 몰려와서 비명을 질러대고 쓰레기를 버려대고 하다보니 곧 경비아저씨들이 나타나서 빗자루를 들며 쫓아내기 시작했고, 사진과 비슷하게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을 걸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아예 경비아저씨가 의자를 들고와서 주차장 입구에 앉아있기도 했다.

  결국 어른들의 개입으로 빨간마스크 처단(?)은 실패로 끝났다. 다만 이때 지하주차장에 출입하던 아이들의 소문과 소문은 또다른 괴담을 만들어냈으니...

 

1. 빨간마스크 인육섭취설 : 지하주차장 구석에 도마와 도끼(혹은 식칼)이 있는데 이는 빨간마스크가 죽인 시체를 처리하기 위함이다.

2. 빨간마스크 자살설 : 위의 도마와 도끼는 자신의 자해도구다.

3. 빨간마스크 이주설 : 빨간마스크가 우리동네에 온 것처럼 다른 동네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이 힘을 썼을 것이다.

4. 빨간마스크 김민제설 : 비슷한 시기 유행하던 돈 괴담의 주인공 김민제(타지역에서는 김민지라고 하는 그 주인공)가 바로 빨간마스크다.

5. 빨간마스크 복수설 : 낮에는 숨어있지만 결국 지하주차장에 들락거린 애들의 집에 복수하러 찾아올 것이다.

 

  이러한 파생소문들이 만들어져서 퍼졌고, 한동안 우리는 빨간마스크네 집에 들락거리지도 못한 채 공포에 떨면서 하교길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애들은 금방 잊는다고 하듯이 어느순간 빨간마스크 이야기는 사라졌다. 그건 우리동네에 애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96년경부터로 기억된다. 그 이후로는 괴기만화같은데서 빨간마스크가 나오면 옛날에 걔가 왔었지 하고 넘어가는 수준으로 남았다. 빨간마스크가 우리동네를 떠난 애들과 함께 떠나버린 사이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고, 나도 1학년에서 2학년이 되었다.

 

4. 빨간마스크의 진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이리저리 자료를 모으던 중, 나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상술했듯이 빨간마스크는 일본에서 왔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 역시 일본에서 시작된 괴담이라는 것. 홍콩할매는 의외로 국산이었지만.(당시에는 홍콩영화처럼 홍콩산이다. 일본산이다 하는 설이 나뉘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꽃가루와 미세먼지가 심했던 일본의 기후현에서 시작된 괴담이라고 한다. 짙은 화장을 한 채 마스크를 쓴 여자 어른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면, 여자 어른들은 마스크를 벗어 반갑게 화답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시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는 화장에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입이 크다.'를 연상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7말8초의 일본의 곳곳에서는 공동하교나 가정통신문이 돌았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에는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돌았다고 한다. 단, 이는 내가 겪은 현실과는 조금 다른데, 이는 우리 동네에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빨간마스크 이야기는 2000년대에 다시 재등장했다고 하는데 파란마스크 하얀마스크 등으로 변형되기도 했다고 한다. 단, 이때는 괴담의 중심에 초등학생들이 있었다고. (이상은 한국어 위키백과와 리그베다 위키를 참조함.)

 

5. 마치며

  살펴보면 빨간마스크 괴담 역시 지금의 인신매매 괴담 등과 같이 불안감에 기댄 도시전설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전자와는 달리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괴담이 전파되었고, 이에 대해서 공식적 보도같은건 없던 편이었다. 요새 스타렉스 괴담이나 인육 괴담을 인터넷 찌라시들이 날라대는것과는 대조적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빨간마스크 괴담은 상당히 순진한 면이 큰 짖궂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마치 옛날이야기의 호랑이나 구미호, 도꺠비같은 존재처럼. 물론 거기에 낚여서 빨간마스크 잡으러가겠다고 한 우리들이 유난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틀어서 보자면 이 괴담은 개구리소년 사건이나 화성연쇄살인사건, 성수대교 붕괴 등 각종 사건들이 즐비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단군이래 최대 호황기였던 9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 대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심리가 발현된 것은 아닐까 한다. 빨간마스크를 무서워하면서도 꼭 한번은 만나서 붙잡고 싶었던 우리들의 심리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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