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은평구와 서대문구 경계에 있는 백련산에 다녀왔다. 백련산이 있는 응암동은 옛날에 넷째외삼촌네가 살던 곳이었다. 지금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연락도 안되지만, 우리가족이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머물곤 했다. 서울 올 일이 많지 않다보니 많아야 두세번정도 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적은 중1때인 2001년, 기억에 남는 가장 옛날은 93? 94?년이다. 초딩때(95-00 사이)도 몇번 갔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에게 자가용이 있긴 했지만, 서울갈때는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지금은 KTX가 있어서 편하게 가지만, 그당시에는 새마을호가 KTX급의 열차였다. 그래서 주로 무궁화호를 이용했다. 지금 무궁화호랑 크게 차이는 없지만, 그때는 그 아래급인 통일호나 비둘기호도 있었다. 어렸을때는 열차가 서지않는 간이역들까지도 외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걸 외우고 앉아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지금도 사라진 역들까지도 몇개 외우고 있다.

 

 

지금은 박물관 비슷한 것으로 쓰이는 옛 서울역

옛날엔 되게 커보였다.

 

  지금은 호남선 열차가 모두 용산역에서 끊기지만, 당시에는 용산역은 존재감이 없었고, 서울역에서 모든 열차가 종착했다. 건물을 나오면 광주에서 가장 넓었던 80m 광로의 몇배나 되어보이는 서울역 광장이 보였고, 그 앞에는 육중한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이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도착해서 공중전화나 핸드폰(90년대 후반 이후)으로 외삼촌에게 연락하면 외삼촌이 데리러오거나, 꼭 타라고 하는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는 바로 빨간색 150번이었다.

  서울역에서 어떻게 이걸 타면 서소문-독립문-홍제역-녹번역을 거쳐서 응암동으로 들어왔다. 어렸을때니 지명은 하나도 몰랐고, 어떤 골목길로 한참 올라가다가 중간에 내리면 외삼촌이 데리러 나왔다. 그러면 버스정류장 초입부터 산길을 따라서 걸어올라갔다. 한참을 걸어올라가면 산중턱에 연립주택같은게 있었고 거기가 외삼촌의 집이었다.

  2001년에 서울에 왔을때는 외삼촌께서 차로 마중나와주셨는데, 그때는 왜인지 충무로역에서 만나서 이동했다. 길막힌다고 신촌으로 돌아서갔는데, 연대앞을 지날때 외삼촌께서 니도 나중에 공부 열심히해서 이런 학교 들어가야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거길 들어오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조금 신기하다.

 

 

외삼촌이 마중나오시던 골목 앞.

길은 배로 넓어졌고, 빨간 150은 녹색 7019번으로 바뀌었다.

알고보니 지금 살고있는 방 앞을 지나는 506번과 5528도 빨간 150의 일부.

 

  외삼촌네 집에 들어가면 간단히 저녁을 먹거나, 사촌들과 노는데 시간을 보냈다. 주로 서울에 올 때는 가족행사같은것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밤이되면 어른들은 밖으로 사라지고, 늦은 밤, 집에는 어린이들밖에 없었다. 90년대 초반에는 PC가 귀해서 컴퓨터게임은 접하기 힘들었고, 외삼촌네에는 그땐 컴퓨터가 없었다. 그러면 사촌이 만화 비디오를 꺼내왔다. 그리고 비디오를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보던 만화는 '근육맨'이라는 만화였는데, 그때는 그 만화가 일본만화인지도 몰랐다. 만화는 테레비에서만 하는것인줄 알았는데 서울은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디오판 오프닝이 남아있었다.

알고보니 근육맨은 일본의 국민만화급의 인기를 누린 물건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먹고 밖에서 놀곤 했다. 연립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 중턱에는 소방도로가 널찍하게 있었고, 거기서 공을 차며 놀았다. 가끔 공이 굴러떨어지면 계단 밑으로 뛰어가서 주워오기도 했다. 낮에 밖에 나오면 밤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꽤 높이 걸어왔는줄 알았는데 외삼촌네 집 뒷편으로도 더 많은 집들이 있었고, 집들 사이사이로 계단들이 어지럽게 이어져있었다. 그때의 궁금증은 서울사람들은 왜 산에 사는가였다. 내가 살던 광주 변두리에는 산이 없었기 때문에 멀쩡한 평지를 두고 산에 모여사는 서울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계단같은데 앉아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반대쪽 산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살았고, 아래로는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뒷산인 백련산에서 찍은 서울 시가지. 아래쪽 나무 바로 위 아파트단지가 옛 연립주택단지.

예전의 서울사람들은 산에 연립주택을 짓더니 지금은 아파트를 지었다. 나중엔 무엇을 지을까.

 

 

그때 타던 마을버스는 지금의 은평05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옛날 외삼촌이 살던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점심을 전후로 (먹거나 그보다 전에) 광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외삼촌께서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지폐를 쥐어주곤 했다. 그리고 마을버스를 타라면서 마을버스가 다니는 골목 근처까지 배웅해주셨다. 마을버스가 뭔지 몰랐던 나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봉고차보다 큰 차가 버스라고 돌아다니는게 신기했다. 그리고 어린이 버스비가 100원밖에 안하는게 매우 신기했다.(광주 어린이 시내버스비가 200원 전후였던 시절이다.) 그리고 왔던 대로 빨간 150을 타고 서울역으로 돌아가거나 마을버스를 더 타서 녹번역까지 내려와서 전철을 타고 돌아갔다.

 

 

녹번역 4번출구.

지금보면 그냥 작은 역인데 어렸을땐 그 주변이 되게 커보였다.

 

   나중에 광주에 돌아와서는 서울에서 겪었던 일들이 환상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를거 없는 사람사는 모습이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때 일기장에는 서울 갔다오면 서울에서 있었던 얘기로 일기를 몇쪽 채우기도 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꼭 공부 열심히해서 서울로 대학가야지'로 귀결되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나와 동생을 보며 이놈들이 서울병에 걸렸다고 얘기하곤 했다. 뭐 그 덕분인지 동네에서 몇 안되는 서울 대학생이 되긴 했다.

  2001년 이후론 넷째외삼촌네가 이민을 가버려서 연락이 안된다. 최근에 강연이형이 애총이 싸이월드 주소를 알려줬는데, 내가 내 아이디의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못들어가고 있다. 뭐 때되면 어떻게든 연락이 닿겠지 뭐. 그때는 이걸 영어로 설명해줘야 하나? 한국말은 기억하려나?

Posted by 인공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