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예비군 2년차다. 휴학을 하다보니 학생예비군에서도 빠졌고, 따라서 예비군훈련도 2박3일짜리를 다녀와야 했다. 지난 6월 초, 예비군훈련을 받기 위해 짐을 싸서 광주로 내려갔다. 하루 집에서 머물고 훈련장소인 진주를 가기 위해서였다.

  진주. 역사책에서는 여러번 본 유서깊은 도시로 경상남도 서부권의 중심지. 조선시대에는 평양과 더불어 잘나가는 도시 중에 하나였다는데... 북쪽 왕가의 수도가 된 평양과는 달리 진주는 인구 30만의 조용한 도시. 사실 200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우리나라의 작은 중소도시였던 진주는 어쩌다보니 제3의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이는 군생활을 진주에서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군필 남성들이 자기 복무지를 향해서는 오줌도 안눈다고 한다. 나 역시 진주를 그렇게까지 호의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편하게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줌을 누기 싫을정도는 아니다.

 

 

2.

  사실 진주는 광주에서 자동차로 과속주행을 하면 한시간 30분 안으로 끊을 수 있을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자주 왕래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대전가는 버스가 약 30분에 한대씩, 서울가는 버스는 5분에 한대씩 돌아다니지만, 진주가는 버스는 이상하리만치 적다. 대략 1시간 반에서 두시간정도에 한대씩이다. 그래서 휴가갔다가 복귀하는(특히 일요일) 오후시간대(나는 주로 14시 40분차를 이용했다.)에는 깜빡하면 차를 놓치기 쉬웠다. 평일복귀를 제외하고는 늘 그모양이었기때문에 휴가 나오자마자 복귀하는 버스를 예매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였다.

  만약 진주가는 차를 놓쳤다면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나도 25개월 중에 딱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혹시 진주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첫째는 광양(중마동 아니다.)가는 시외버스를 잡아탄 다음 광양읍에서 열차로 갈아탄다. 최근에 광양역이 위치를 옮겨서 힘든 방법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터미널 바로 옆이 광양역이었다. 광양에 주로 16시즈음 도착하면, 광양에서 진주가는 열차가 16시 30분에 있었다. 그럼 여유롭게 진주까지 갈 수 있다. 기차가 느린게 흠이지만 복귀까지는 아무문제 없다. 광양에서 진주가는 시외버스도 비슷한 시간대에 있기때문에 꽤 괜찮은 선택지다. 둘째는 순천가는 시외버스를 잡아탄 다음 순천에서 진주가는 버스를 탄다. 만약 진주가는 버스가 없다면 별수없다. 택시밖에 답이 없다.

 

 

유스퀘어(광천터미널) 8번 탑승구. 대전이나 유성, 진주행 버스가 멈춘다.

묘하게 세 도시는 공군과 관련이 깊다.

 

  야구팬들은 8이라는 숫자를 별로 안좋아한다. 9구단체제 이전에는 꼴찌를 상징하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의미에서 8이라는 숫자가 영 내키지 않는다. 바로 위에 나온 8번 탑승구 때문이다. 복귀날이면 이른 점심을 먹고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터미널까지 태워주셨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기에 오면 나처럼 복귀하는 장병들, 역시 휴가후 복귀하는 항과고생들 몇몇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결같이 표정이 어두웠다. 가끔 심심하다며 말을 걸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보다 표정이 더 암울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천기지 사람들이었다. 사천기지 사람들은 중간에 내려서 사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을 하는데, 그시간이 그렇게 아깝다고 한다. 적어도 내가시내에서 맛난거 먹을 시간에 이들은 또 어디론가 이동해야할테니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3.

  광주에서 진주가는 고속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멈춘다. 길이 안막혀서 시간이 남으면, 이 곳에 머무는 시간이 연장된다. 2시간을 딱 맞추기 위해서인지. 아무튼 섬진강휴게소에 내리면 화장실에 들렀다가 여지없이 편의점으로 향하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공장표 카스테라와 사이다. 부대에서는 카스테라같은건 먹기 힘드니까. 공장표 카스테라는 꽤 양이 되는데, 목이 메든 말든 상관없이 허겁지겁 먹어줘야 맛이 난다. 마지막에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캬~!

 

섬진강휴게소. 정말로 섬진강 바로 옆에있다. 강 건너편은 경남 하동.

 

  고속버스를 타면서 이동하다보면 암울해지는 경우가 몇몇 있다. 제일 먼저 좌절할때는 석곡(곡성군 석곡면)과 주암(순천시 주암면) 사이. 군생활동안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부근에서 101.1과 96.7이 갈라진다. 101.1의 전파가 점차 약해지면 '아 시밮 점점 진주랑 가까워지네' 하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다운된다. 두번째로 좌절할때는 서순천나들목을 통과할 때. 고속도로에 거리 이정표에는 대략의 지명이 나오는데, '진주'가 처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서순천이다. 세번째로 좌절할때는 섬진강을 건널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가 나눠지는 곳이다. 네번째로 좌절할때는 진교나들목(하동군 진교면)을 통과할 때. 여기서부터 도로번호가 4자리로 바뀐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에서 도로번호가 4자리로 뜨는 곳은 경상남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절망할 때는 진주시로 나가기 위해서 사천 지나서 우측차로로 꺾을때다. 그리고 개양정류장을 지나 진주시내로 들어가면 이내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더러운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

  한편 휴가나갈때는 반대로 된다. 첫째로 행복할때는 진주시를 벗어났을때. 머리위로 통영가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면 안심이 된다. 둘째는 섬진강을 건널때. 특히 겨울에 경남에는 눈이 잘 안오는데 이상하게도 섬진강만 건너면 폭설이 몰아친다. 아 눈의 고장 전남이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세번째는 진월(광양시 진월면). 고속도로 옆으로 지방도 하나가 지나는데 지방도 번호가 800번대다. 숫자주제에 나에게 녹색의 땅 전남에 오신것을 환영하는듯한 느낌이다. 네번째로 행복할 때는 옥과(곡성군 옥과면)를 지날때다. 이정표에 15번 국도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마주친 도로들 중에서 고속도로를 제외하고 광주로 직결하는 유일한 국도다. 일단 국도 숫자에 1이 들어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우리집이 13번국도 바로 옆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동광주 톨게이트 지날때. 전쟁나지않는이상 누가 날 이 밖으로 끌고나갈 수 없을거다라는 느낌이 팍 든다.

 

 

4.

  진주에 도착하면 저녁때 무엇을 먹고 들어갈지는 정말 중요한 고민이다. 기왕이면 사회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을만큼 빨아먹기 위해서다. 진주에도 '시내'가 있지만, 사실 진주 먹자골목의 핵심은 이른바 '산대'다. 경상대도 있지만 금산가는 버스가 없어서 제외한다.

 

 

진주고속터미널, 진주 환락의 중심(??) 산대(정확히는 칠암동)에 있다.

 

  환락의 중심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대학가고, 대학생이 아니었던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가끔 복귀일이 같은 선/후임을 만나면 이 근처에서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복귀하는 선례가 있었다. 아 그전에 앞 공중전화에서 부대에 전화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주로 먹었던 메뉴는 터미널 바로옆의 중국집(이번에 갔을 때 보니 없어졌다.)과 교육사 장병들에게 역사와 전통급으로 유명한 옥천식당 제육이 있었다. 이번에는 같이 예비군훈련을 받게 된 672기 동기 성찬이와 함께했다. 성찬이와는 같이 행정학교에서 근무했다.

 

 

옥천식당 전경. 산대정문 건너편 골목으로 한 30미터정도 들어가면 있다.

충북 옥천군이나 냉면으로 유명한 양평 옥천과는 무관하다.

 

이게 바로 옥천제육. 제육보다는 저 찌개랑 계란말이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옥천제육은 휴가나가는 날 아침을 때울 때, 복귀날 저녁을 때울 때 선임들이 사주던 메뉴였다. 식당이 최신식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양하나는 끝내준다. 그때는 선임 앞에서 '와구와구'(결코 수사가 아니다.) 먹어야 예의였기 때문에 보이는 음식을 게눈 감추듯 흡입하곤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무지 배가 고팠는지 난 이날 두그릇이나 먹었다.

  대부분 같이 들어가는 경우 여기서 택시를 타고 복귀하곤 했다. 아니면 간부들 차를 얻어탄다거나. 그러나 나는 주로 평일복귀자였고, 사무실 특성상 남들과 휴가가 잘 겹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친구들과도 겹치지 못했던 적이 많았고. 어쨌든, 그런 경우 위의 옥천제육을 잘 먹지 않았다. 혼자먹기에는 비싸니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이용했던 곳은 시내의 여러 음식점들. 시내가는 버스들(주로 XX광장이라고 이정표에 써져있으면 아무거나 상관없다.)을 타고 시내에서 짱깨나 일식, 스파게티, 아님 분식 등을 먹기도 했고. 어떤날에는 서부시장까지 가서 진주의 명물 진주냉면을 먹기도 했다. 일단 시내행의 장점은 금산가는 버스가 있다는 점이었다. 산대앞에는 아쉽게도 금산가는 버스가 없다. 나중에 333번이 생겼지만 이것도 공교사행은 하루 n대 수준이었다. 시내에서는 좀 버스노선이 꼬여있어서 병장달고나서는 시내보다는 하대동을 선호했다. 하대동에도 진주냉면집이 있었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저가 음식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5.

  저녁을 다 먹고 복귀할 때가 되면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지 않다. 이미 더러워질만큼 더러워져서인지. 아니면 적응이 되어서인지. 그냥 '내 집 돌아가야지 에휴' 하는 생각이 주로 들었다. 물론 저 에휴가 더 큰 것이 핵심이다.

  금산가는 버스는 내 전역일까지 기준으로 188번, 70-2번이 있었다. 지금은 268? 281?인가 번호가 바뀌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한 번호에도 이정표따라서 노선이 다 달랐기 때문에 주의해야했다. 공교사에 있던 한 멍청이는 188번이라고 아무거나 탔다가 금산면 어디 논 한복판에 내려져서 걸어온 경우도 있었다.

 

 

25개월간 살았던 공교사의 1정문.

이 앞에 혁신도시라고 신도시가 들어서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188번의 경우 2정문까지 운행한다. 차는 안으로 들어가 관사단지까지 운행하지만 장병은 정문에서 내려서 걸어들어가야 한다. 2정문을 통과하고나서 X밴드를 차고 비성대로를 걸어갈때는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저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들을 향해 자동적으로 경례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짤없는 군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주로 들었다. 당직실에 보고하고나서는 재빨리 씼고 점호끝나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휴가 복귀날만큼은 웬만해서 선후임들이 잘 안건드렸다.

  70-2번을 탄 경우에는 2정문에 내려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때는 1정문(1정문 옆 속사리가 종점이다.)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도 했다. 1정문 근처에 부대가 있어서 당직실에 당직서는 병사한테 인사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쪽은 차가 잘 안다녀서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제일먼저 든 생각은 물론 밀린 업무들이었지만.

 

 

6.

  이번에 훈련차 진주에 다시 가서 놀란 점은 교육사가 많이 바뀐 점. 주변지역이 바뀐만큼 공교사도 조금씩 변해온 모양이다. 특히 이번에 행정학교에 들렀을 때는 내가 있을때보다도 더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말년이 된 태용이(전역 전에는 하하사님이었지만)를 보니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부대에 있을때 가보지 못한 진주시 곳곳의 명소나 2정문지역(금산면 시가지)도 가보려 했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가지 못했다. 하지만 25개월의 경험들을 3일간에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올 일이 없어서인지 더 소중하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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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이 2013.07.29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도 실감나게 같이 동행 했습니다.

  2. 622 2013.11.30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군 출신으로서 반갑네요. 실감나게 잘 읽고 갑니다.

  3. rokaf 2014.03.19 0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진주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같은 공교사 출신이시네요..비슷한 시기에 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