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오랜만에 쓰는 일기

 

2. 또 꿈을 꾸었다. 분명히 이정표상에는 우리동네였는데 모습은 매우 달랐다. 지금의 우리동네보다 훨씬 도시화가 많이 된 느낌. 주변의 황무지들이 사라졌고, 오래된 아파트들과 상가들은 재개발이 되어 새건물로 바뀌어있었다. 성심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송정리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지나다니는 시내버스는 무지 많은데 노선을 몰라 헤매다가 멀리서 오는 180번 버스를 잡아탔다. 이 버스는 자주 오는 버스는 아닌모양인지 거의 텅 비어있었고, 기사아저씨마저도 '어디가시는데 이걸 타셨어요'라고 묻고있었다. "이거 송정공원역 가요?" "예 갑니다." 아저씨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내리긴 내렸는데, 내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곳과는 또 다르다. 철길이 있어야 할 자리엔 주택단지가 들어섰고, 골목 사이사이로 마을버스들이 사람을 토하고 있었다.

 

3. 나는 이윽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웬 비디오가게에 들어섰다. 꿈속의 나에게는 꽤 익숙한 곳이었던 것 같다. 비디오가게는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있었는데, 제일 안쪽에는 무협지나 판타지가 쌓여있는 공간, 입구에는 약간의 DVD와 비디오들이 수두룩했고, 중간의 진열대에는 음악CD와 테이프들이 널려있었다. 진열대 아래쪽 선반에도 빼곡히 차 있었다. 아마도 테이프 수집을 위해 이곳에 온 모양이다. 테이프들을 요리조리 뒤집어보며 원하는 물건을 찾아보았지만, 원하는 물건들은 거의 없었다. 이미 내가 모은것들이 많았고, 잘 알지 못하는 외국 가수들이나 고속도로 트로트메들리, 수집대상이 아닌 클래식 음반들이 너무 많았다. 상심해하며 가게를 나가려는데, 주인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요새 테이프나 비디오를 찾는 사람이 너무 없다면서.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오렌지주스를 내다주셨고, 할아버지는 아마도 80년대 말 90년대 초쯤에 나온듯한 홍콩영화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이거나 보고가라고 말하셨다. 곧 어두워져서 들어가봐야겠다고 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4. 갑자기 시공간이 바뀌면서 KTX 안으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언제부터 기차가 공주시로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이 생겼는지 공주에 긴급정차했다. 다음열차나 타야지 하고서는 열차에 내렸다. 심심해서 역 건물 곳곳을 기웃거렸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사무실 공간은 행정학교랑 비스므리하게 생겼고, 직원들도 다는 아니었지만 행정학교 옛 간부들이었다. 왜 재관이형과 이영준중위님이 여기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두분은 함께있었다. 여긴 왠일이냐며 역시나 주스를 내주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한참 이리저리 얘기를 하다가, 이분들이 요새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 영화는 3번에서 나오는 홍콩영화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어 저도 본것같아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열차표나 사야겠다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곧 칙칙폭폭 비슷한 소리와 KBS 스포츠 음악이 나오면서 잠에서 깼다.

 

5. 생각해보니 이번 꿈의 주제는 오래된 미래?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제 2호선 열차를 타고 하늘은 난 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유쾌하거나 재밌는 꿈은 아니었다. 계속 비가와서 몸이 무거운 탓인지, 일어나서 꿈 내용을 복기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그랬을까.

 

6. 어제 시켜먹은 탕수육이 남아서 어떻게 데워먹을까 고민하다가 남은 간장 약간 넣어서 팬에 볶아먹었다.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7. 원래 날씨때문에 축늘어진다거나 그런적은 거의 없는데, 그래도 날마다 비가오니 조금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더운건 싫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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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2. 꿈속에서 락큐와 나 해큐와 기현이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락큐가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있었고, 나머지 역시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차는 인천 북성동이나 부산 감천부두스러운 곳에 멈췄다. 부두 안쪽으로 들어가니 낡은 창고가 있었다. 입구에는 트레일러 몇대가 서있었고, 트레일러 운전석에는 좀전까지 사람이 있던 흔적이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창고가 아닌 커다란 공장이었다. 무엇을 만드는 공장인지는 모르겠다. 락큐가. 음! 하더니 어디론가로 부지런히 뛰어갔다. 쇠파이프를 든 해큐와 빠루를 들고있던 기현이도 따라들어갔다. 나도 따라들어갔더니 갑자기 기계 한쪽에서 이상한 비명과 함께 사람이 푹 튀어나왔다. 우리는 그를 전속력으로 쫓았다. 기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우리보다 배로 날랜 상대방은 이내 사라졌다. 허탕이다. 하면서 나왔는데 트레일러 문이 열려있다. 운전석에는 멍투성이가 된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말을 못하는거 보니 중국인같았다. 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냈고, 우리는 부두를 빠져나왔다.

 

3. 부두를 빠져나왔는데 이국적인 거리가 나타났다. 거리에는 흑형들이 이리저리 지나다니고, 서아프리카 해안가 도시에서나 볼듯한 좌판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두 큐와 기현이는 배고프다고 분식집(?)으로 향했다. 나는 볼일있다며 잠시 빠져나왔다. 미리 약속이 되어있는지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은 여태껏 본적없는(심지어 테레비에서도)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두살이 많았다. 왜늦었냐면서 서점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서점에서 민법총론, 헌법개론 이런 책들을 하나둘 고르기 시작했다. 수험용 요약집을 같이 사는거 봐서는 사시생 아니면 로스쿨생이었나보다. 무거우니까 나 줘라. 하면서 나도 어느정도 책을 들어줬다. 같이 책을 산 후 큐들이 있는 분식점으로 향했다. 큐들은 이미 팥칼국수와 순대를 와장창 먹고있었고, 내몫은 식을까봐 주문 안해놨다고 했다. 책이 무거워죽겠으니 차키 빨리 내놔라 하고 차키를 받아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4. 총체적으로 개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것을 보니 꿈은 역시 반대다.

 

5. 최근에 괴담에 대해서 경찰에서 속지마라고 한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봤다. 친구들과의 괴담으로 공포를 공유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것같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이 홍콩할매나 빨간마스크가 한국에 떴다며 꺆꺆거리며 아파트단지를 뛰어다녔듯, 요새 애들은 중국인이 누굴 칼로 쑤셨대 하면서 트윗에서 꺆꺆거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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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예비군 2년차다. 휴학을 하다보니 학생예비군에서도 빠졌고, 따라서 예비군훈련도 2박3일짜리를 다녀와야 했다. 지난 6월 초, 예비군훈련을 받기 위해 짐을 싸서 광주로 내려갔다. 하루 집에서 머물고 훈련장소인 진주를 가기 위해서였다.

  진주. 역사책에서는 여러번 본 유서깊은 도시로 경상남도 서부권의 중심지. 조선시대에는 평양과 더불어 잘나가는 도시 중에 하나였다는데... 북쪽 왕가의 수도가 된 평양과는 달리 진주는 인구 30만의 조용한 도시. 사실 200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우리나라의 작은 중소도시였던 진주는 어쩌다보니 제3의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이는 군생활을 진주에서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군필 남성들이 자기 복무지를 향해서는 오줌도 안눈다고 한다. 나 역시 진주를 그렇게까지 호의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편하게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줌을 누기 싫을정도는 아니다.

 

 

2.

  사실 진주는 광주에서 자동차로 과속주행을 하면 한시간 30분 안으로 끊을 수 있을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자주 왕래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대전가는 버스가 약 30분에 한대씩, 서울가는 버스는 5분에 한대씩 돌아다니지만, 진주가는 버스는 이상하리만치 적다. 대략 1시간 반에서 두시간정도에 한대씩이다. 그래서 휴가갔다가 복귀하는(특히 일요일) 오후시간대(나는 주로 14시 40분차를 이용했다.)에는 깜빡하면 차를 놓치기 쉬웠다. 평일복귀를 제외하고는 늘 그모양이었기때문에 휴가 나오자마자 복귀하는 버스를 예매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였다.

  만약 진주가는 차를 놓쳤다면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나도 25개월 중에 딱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혹시 진주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첫째는 광양(중마동 아니다.)가는 시외버스를 잡아탄 다음 광양읍에서 열차로 갈아탄다. 최근에 광양역이 위치를 옮겨서 힘든 방법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터미널 바로 옆이 광양역이었다. 광양에 주로 16시즈음 도착하면, 광양에서 진주가는 열차가 16시 30분에 있었다. 그럼 여유롭게 진주까지 갈 수 있다. 기차가 느린게 흠이지만 복귀까지는 아무문제 없다. 광양에서 진주가는 시외버스도 비슷한 시간대에 있기때문에 꽤 괜찮은 선택지다. 둘째는 순천가는 시외버스를 잡아탄 다음 순천에서 진주가는 버스를 탄다. 만약 진주가는 버스가 없다면 별수없다. 택시밖에 답이 없다.

 

 

유스퀘어(광천터미널) 8번 탑승구. 대전이나 유성, 진주행 버스가 멈춘다.

묘하게 세 도시는 공군과 관련이 깊다.

 

  야구팬들은 8이라는 숫자를 별로 안좋아한다. 9구단체제 이전에는 꼴찌를 상징하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의미에서 8이라는 숫자가 영 내키지 않는다. 바로 위에 나온 8번 탑승구 때문이다. 복귀날이면 이른 점심을 먹고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터미널까지 태워주셨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기에 오면 나처럼 복귀하는 장병들, 역시 휴가후 복귀하는 항과고생들 몇몇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결같이 표정이 어두웠다. 가끔 심심하다며 말을 걸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보다 표정이 더 암울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천기지 사람들이었다. 사천기지 사람들은 중간에 내려서 사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을 하는데, 그시간이 그렇게 아깝다고 한다. 적어도 내가시내에서 맛난거 먹을 시간에 이들은 또 어디론가 이동해야할테니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3.

  광주에서 진주가는 고속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멈춘다. 길이 안막혀서 시간이 남으면, 이 곳에 머무는 시간이 연장된다. 2시간을 딱 맞추기 위해서인지. 아무튼 섬진강휴게소에 내리면 화장실에 들렀다가 여지없이 편의점으로 향하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공장표 카스테라와 사이다. 부대에서는 카스테라같은건 먹기 힘드니까. 공장표 카스테라는 꽤 양이 되는데, 목이 메든 말든 상관없이 허겁지겁 먹어줘야 맛이 난다. 마지막에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캬~!

 

섬진강휴게소. 정말로 섬진강 바로 옆에있다. 강 건너편은 경남 하동.

 

  고속버스를 타면서 이동하다보면 암울해지는 경우가 몇몇 있다. 제일 먼저 좌절할때는 석곡(곡성군 석곡면)과 주암(순천시 주암면) 사이. 군생활동안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부근에서 101.1과 96.7이 갈라진다. 101.1의 전파가 점차 약해지면 '아 시밮 점점 진주랑 가까워지네' 하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다운된다. 두번째로 좌절할때는 서순천나들목을 통과할 때. 고속도로에 거리 이정표에는 대략의 지명이 나오는데, '진주'가 처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서순천이다. 세번째로 좌절할때는 섬진강을 건널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가 나눠지는 곳이다. 네번째로 좌절할때는 진교나들목(하동군 진교면)을 통과할 때. 여기서부터 도로번호가 4자리로 바뀐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에서 도로번호가 4자리로 뜨는 곳은 경상남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절망할 때는 진주시로 나가기 위해서 사천 지나서 우측차로로 꺾을때다. 그리고 개양정류장을 지나 진주시내로 들어가면 이내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더러운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

  한편 휴가나갈때는 반대로 된다. 첫째로 행복할때는 진주시를 벗어났을때. 머리위로 통영가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면 안심이 된다. 둘째는 섬진강을 건널때. 특히 겨울에 경남에는 눈이 잘 안오는데 이상하게도 섬진강만 건너면 폭설이 몰아친다. 아 눈의 고장 전남이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세번째는 진월(광양시 진월면). 고속도로 옆으로 지방도 하나가 지나는데 지방도 번호가 800번대다. 숫자주제에 나에게 녹색의 땅 전남에 오신것을 환영하는듯한 느낌이다. 네번째로 행복할 때는 옥과(곡성군 옥과면)를 지날때다. 이정표에 15번 국도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마주친 도로들 중에서 고속도로를 제외하고 광주로 직결하는 유일한 국도다. 일단 국도 숫자에 1이 들어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우리집이 13번국도 바로 옆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동광주 톨게이트 지날때. 전쟁나지않는이상 누가 날 이 밖으로 끌고나갈 수 없을거다라는 느낌이 팍 든다.

 

 

4.

  진주에 도착하면 저녁때 무엇을 먹고 들어갈지는 정말 중요한 고민이다. 기왕이면 사회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을만큼 빨아먹기 위해서다. 진주에도 '시내'가 있지만, 사실 진주 먹자골목의 핵심은 이른바 '산대'다. 경상대도 있지만 금산가는 버스가 없어서 제외한다.

 

 

진주고속터미널, 진주 환락의 중심(??) 산대(정확히는 칠암동)에 있다.

 

  환락의 중심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대학가고, 대학생이 아니었던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가끔 복귀일이 같은 선/후임을 만나면 이 근처에서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복귀하는 선례가 있었다. 아 그전에 앞 공중전화에서 부대에 전화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주로 먹었던 메뉴는 터미널 바로옆의 중국집(이번에 갔을 때 보니 없어졌다.)과 교육사 장병들에게 역사와 전통급으로 유명한 옥천식당 제육이 있었다. 이번에는 같이 예비군훈련을 받게 된 672기 동기 성찬이와 함께했다. 성찬이와는 같이 행정학교에서 근무했다.

 

 

옥천식당 전경. 산대정문 건너편 골목으로 한 30미터정도 들어가면 있다.

충북 옥천군이나 냉면으로 유명한 양평 옥천과는 무관하다.

 

이게 바로 옥천제육. 제육보다는 저 찌개랑 계란말이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옥천제육은 휴가나가는 날 아침을 때울 때, 복귀날 저녁을 때울 때 선임들이 사주던 메뉴였다. 식당이 최신식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양하나는 끝내준다. 그때는 선임 앞에서 '와구와구'(결코 수사가 아니다.) 먹어야 예의였기 때문에 보이는 음식을 게눈 감추듯 흡입하곤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무지 배가 고팠는지 난 이날 두그릇이나 먹었다.

  대부분 같이 들어가는 경우 여기서 택시를 타고 복귀하곤 했다. 아니면 간부들 차를 얻어탄다거나. 그러나 나는 주로 평일복귀자였고, 사무실 특성상 남들과 휴가가 잘 겹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친구들과도 겹치지 못했던 적이 많았고. 어쨌든, 그런 경우 위의 옥천제육을 잘 먹지 않았다. 혼자먹기에는 비싸니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이용했던 곳은 시내의 여러 음식점들. 시내가는 버스들(주로 XX광장이라고 이정표에 써져있으면 아무거나 상관없다.)을 타고 시내에서 짱깨나 일식, 스파게티, 아님 분식 등을 먹기도 했고. 어떤날에는 서부시장까지 가서 진주의 명물 진주냉면을 먹기도 했다. 일단 시내행의 장점은 금산가는 버스가 있다는 점이었다. 산대앞에는 아쉽게도 금산가는 버스가 없다. 나중에 333번이 생겼지만 이것도 공교사행은 하루 n대 수준이었다. 시내에서는 좀 버스노선이 꼬여있어서 병장달고나서는 시내보다는 하대동을 선호했다. 하대동에도 진주냉면집이 있었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저가 음식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5.

  저녁을 다 먹고 복귀할 때가 되면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지 않다. 이미 더러워질만큼 더러워져서인지. 아니면 적응이 되어서인지. 그냥 '내 집 돌아가야지 에휴' 하는 생각이 주로 들었다. 물론 저 에휴가 더 큰 것이 핵심이다.

  금산가는 버스는 내 전역일까지 기준으로 188번, 70-2번이 있었다. 지금은 268? 281?인가 번호가 바뀌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한 번호에도 이정표따라서 노선이 다 달랐기 때문에 주의해야했다. 공교사에 있던 한 멍청이는 188번이라고 아무거나 탔다가 금산면 어디 논 한복판에 내려져서 걸어온 경우도 있었다.

 

 

25개월간 살았던 공교사의 1정문.

이 앞에 혁신도시라고 신도시가 들어서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188번의 경우 2정문까지 운행한다. 차는 안으로 들어가 관사단지까지 운행하지만 장병은 정문에서 내려서 걸어들어가야 한다. 2정문을 통과하고나서 X밴드를 차고 비성대로를 걸어갈때는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저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들을 향해 자동적으로 경례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짤없는 군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주로 들었다. 당직실에 보고하고나서는 재빨리 씼고 점호끝나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휴가 복귀날만큼은 웬만해서 선후임들이 잘 안건드렸다.

  70-2번을 탄 경우에는 2정문에 내려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때는 1정문(1정문 옆 속사리가 종점이다.)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도 했다. 1정문 근처에 부대가 있어서 당직실에 당직서는 병사한테 인사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쪽은 차가 잘 안다녀서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제일먼저 든 생각은 물론 밀린 업무들이었지만.

 

 

6.

  이번에 훈련차 진주에 다시 가서 놀란 점은 교육사가 많이 바뀐 점. 주변지역이 바뀐만큼 공교사도 조금씩 변해온 모양이다. 특히 이번에 행정학교에 들렀을 때는 내가 있을때보다도 더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말년이 된 태용이(전역 전에는 하하사님이었지만)를 보니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부대에 있을때 가보지 못한 진주시 곳곳의 명소나 2정문지역(금산면 시가지)도 가보려 했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가지 못했다. 하지만 25개월의 경험들을 3일간에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올 일이 없어서인지 더 소중하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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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이 2013.07.29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도 실감나게 같이 동행 했습니다.

  2. 622 2013.11.30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군 출신으로서 반갑네요. 실감나게 잘 읽고 갑니다.

  3. rokaf 2014.03.19 0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진주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같은 공교사 출신이시네요..비슷한 시기에 있던것 같습니다.

1. 아주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사실 귀찮아서 안썼다.

 

2. 에어컨을 틀자니 전기세가 아까워서 예전에 종욱이형이 남기고간 선풍기가 생각났다. 선풍기를 창가에 틀면 강제환기가 되어서 더 시원해진다는 스펀지의 연구(?)결과가 생각나서 직접 실험해보기로 결정했다. 실험결과 밤에는 1도의 하락효과가 있었는데, 그냥 샤워하고 자는거랑 별반 다를게 없었다. 낮에는 뭐 밖이 더 더우니 패스. 묘하게 예전 학생대대장 한모씨가 생각난다.

 

3. 저녁에 배고플때 과일을 우걱우걱하거나 미숫가루를 타먹곤 한다. 땀이 많이나고 쳐지는 날씨 탓인지 단게 매우 땡긴다. 그래서 단골 슈퍼에 가서 두유를 한 팩 샀다.(우유를 원했으나 팔지 않았다.) 두유에 미숫가루를 타먹으니 곡물의 고소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그래 이맛이야!!

 

4. 밤에 일찍자려고 취침알람을 만들었다. 기상알람은 KBS 스포츠 음악인데, 취침알람곡은 아직 안정했다. 뭐가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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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토요일

 

1. 이번주말은 토요일에도 학원을 안간다. 덕분에 어디서 뭘 하며 재밌게 보낼까 고민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왕따나무가 생각나서 운동도 할 겸 올림픽공원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2. 약속이 아니니까 버스를 타고가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5528-461-3413을 이용했다. 잠실은 길막힐것같아서 절대 안가려고했는데 가락시장에서 올림픽공원으로 가는 방법이 당최 안보여서 그냥 3413번을 탔다. 다행히 길은 길이 막히지 않았다. 중간에 석촌호수 위를 지나갔는데 내 예상보다 호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쌍암공원 호수와 비슷하려나?

 

3. 서울에 천만이 산다고는 해도 천만을 실감해본적은 없었는데, 대치동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가방멘 학생들을 보고서는 천만이 사는 도시라는 것을 실감했다. 토요일 낮시간이었는데도 다들 학원에서 흘러나오는게 신기했다.

 

4. 올림픽공원에 도착했더니 무슨 행사한다고 사람들이 우글우글... 평화의문에서 내리는건 포기하고 중간에 백제박물관을 통해 들어갔다. 백제박물관에는 어디 영어학원에서 왔는지 교포스타일의 여자와 거대한 몸집의 여자 양이가 팩채 킹덤을 중얼거리며 아이들에게 백제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해도 잘 모를듯한 중학교 저학년쯤의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초딩들이 신나게 런닝맨놀이를 하고있었다. 이제 좀 넓고 복잡한 건물에서는 런닝맨놀이가 대세인가보다. 뭐 우리도 어렸을때 탈출놀이 잡기놀이 별거 다했으니.

 

5. 하필이면 날씨가 30도를 오르내려서 야외보다는 실내를 찾아 돌아다녔고, 올림픽기념관을 거쳐 토성쪽으로 들어가니 왕따나무가 보였다. 내 머리속의 왕따나무 사진은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연두빛 잔디와 짙은녹색의 나무가 어우러진 윈도우즈 바탕화면 스타일이었는데 찍고나니 영 아니다. 잘만 보정하면 안개낀 아침의 이미지가 나오기도 하겠지만. 뭐 어쩔수 없지.

왕따나무. 공원에는 외톨이나무라고 이름붙어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이제 컴퓨터 바탕화면이 됩니다.

 

6. 중간에 너무 더워서 화장실을 들를 겸해서 어떤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한국과 앙골라의 여자핸드볼팀 경기가 있었고, 후반전이었기때문에 난 공짜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친선경기같아보였지만 양팀선수들 열심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끔 다쳐서 아파하는 목소리가 관중석까지도 들렸는데 그땐 어느팀 선수건 조금 걱정도 되었다. 결과는 한국의 승리.

 

한국과 앙골라의 핸드볼경기. 한국이 이겼다.

 

7. 돌아올때는 선수촌아파트에서 3319-461-641-5528로 왔다. 빵지태가 송파구에 살아서 연락하려다가 바쁠까봐 그냥 안불렀다. 차고지에서 환승하고 한숨 자다가 중간에 배가고파서 남부터미널에서 내려 뭐좀 먹고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집에와서 또 밥을 해먹었다. 어제 좀 많이 걸었다보다.

 

8. 집에 와서는 너무 더워서 맥주 한잔하고 샤워까지 했다. 실내온도가 26도였다.

 

 

5월 26일 일요일

 

1. 어제 술을 좀 마셨더니 늦게일어났다.

 

2. 오늘은 사학과 5민중에 두 민과 덕수궁에 가는 날. 돈뽑는사이 시청가는 버스를 놓쳐서 결국 3번이나 환승했다. 예상대로 상민이형은 버스 세번이나 갈아탄 나보다도 지각했고, 상민이형보다는 빨리온 응민이와 음료수를 사마셨다. 상민이형이 오고나서 표를 사고 근처의 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먹었다. 배가고파서 나는 국밥을 거의 마셨다.

 

4. 이번 덕수궁미술관의 전시는 야나기 무네요시에 관한 전시. 공예와 민속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한국 미술사에서도 가끔 언급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쩐지 한자이름도 한국스타일 유종열(柳宗悅)이었다. 사실 개드립이고 일본에도 외자성은 많다.

 

5. 상민형과 응민이는 해설사분 설명과 함께 돌고있었고, 난 빠르게 한바퀴를 싹 돌고 쉬었다. 나중에 해설사팀이 2층에 올라와서 설명할때 잠시 끼어서 설명을 듣고 내려왔다. 끝나고 세명이서 나름 기념샷 인증샷을 분수대 앞에서 찍었다.

 

6. 어제도 느꼈지만 서울에는 외국인이 유난히 많은듯.

 

7. 너무일찍 관람이 끝난덕분에 잉여가 된 3인은 예전에 응민이가 일하던 공덕으로 자리를 옮겨 모 커피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나왔다. 휴학하다보니 학교사람들과 얘기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오랜만에 학교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다.

 

8. 응민이를 보내고 심심해서 상민이형의 다음행선지인 화곡동에 같이따라갔다. 중간에 저녁도 얻어먹었다. 상민이형이 한문공부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배웅해주고 돌아왔다. 상민이형이 까치산역 가는 길을 알려줬는데 반대방향으로 알려줬는데 어떻게 멀쩡히 집에 잘 들어왔다.

 

9. 집에와서 참외를 깎아먹으려다가 참외는 오이과지! 하는 생각에 그냥 칼질 안하고 껍질을 박박 씻어서 그냥 씹어먹었다. 나름 맛있었다.

Posted by 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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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ㅇ 2013.06.02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잉여잉여! 혐오이왔다감

    연앱하고싶다..

  2. 2013.06.15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앱퍼인데요..학숙 살기도 했고..

  3. 루머 2013.06.24 2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혐오이 여신설